열린토론방
쌍용차 도와 달라 8만의 호소?
“쌍용차 도와 달라, 8만명의 호소”(서울신문)가 되려면 살아남은 자들만 아니라 부당하게 공장에서 쫓겨나 고통 받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 전체를 아우르는 주장이어야 한다. 나만 살겠다는 호소는 결국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파업했더니, 쌍용차 자금난 가동중단 위기, 산업은행에 1천억 긴급 요청”(매일경제) 현실을 보면 노동자를 정리해고 하고 공권력을 투입해 투쟁을 제압했다고 해서 회사가 살아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고 민주노조를 깨겠다는 정권과 자본의 의도대로 진행되었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결국 노조가 파업하기 전 주장했던 산업은행을 통한 공적자급 투입 외엔 방법이 없었다. 투기자본의 기술유출과 이를 방조한 정부와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작년 노조집행부와 파업조합원들의 투쟁은 정당했다. 그러나 사측에 붙어 자기들만 살겠다는 길을 선택한 세력들이 지금에 와서도 작년 파업을 폄훼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금호타이어 개인 투자자 4500억 채무소송 우려, 노조협상 산 넘어 산”(파이낸셜 뉴스), “금호타이어 지원에 파업 난기류”(중앙일보)라는 소리는 헛소리다. 금호타이어의 난기류는 자본주의 위기의 반영이고 그런 위기 속에서 재벌중심의 문어발 확장경영이 낳은 위기의 증폭이다. “그래도 파업, 금호타이어 노조 파업 선택, 워크아웃 불구 구조조정반발”(매일경제), “금호타이어 노조, 결국 파업하나”(파이낸셜 뉴스)로 몰아가는 것은 책임의 결과를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돌리고 있다. 파업은 부실경영의 경과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일 뿐이다.
1200여명의 노동자들이 졸지에 생존의 벼랑에 내몰리는 데 가만히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정치권 민주노총 개입 금호타이어 쌍용차 사태 닮아간다”(한국경제)는 주장 역시 쌍용차 사태로 몰아가려는 의도로 쓰인 각본을 드러내고 있다. 파업 이후엔 공권력 투입과 노조 무력화다. “금호타이어 노사, 상생 방안 마련하길”(국민일보), “금호타이어, 공멸이 아닌 상생의 길 찾아야”(매일경제)한다는 주장은 1200명은 죽이고 나머지 노동자들과 사측의 관계를 말한다. 그것도 일시적 상생과 평화일 뿐이지만 말이다.
“KT노조․희망연대 등 변화 주목, 노동운동 제3의 물결”(한국경제)을 말하지만 그 물결은 이미 오염된 지 오래된 물결이다.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내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그렇다고 상류의 오염된 물이 전체 강을 더럽히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노동운동으로선 이미 파탄 난 지 오래된 세력들이 ‘희망’과 ‘제3물결’을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제3의 물결을 예견했던 앨빈 토플러는 오늘날의 물결은 상상도 못했다. 제3의 정치물결을 얘기했던 영구의 노동당은 신자유주의 노동탄압과 착취의 전선에 서 있다. 자본이 “민노총 옷차림만 바뀌었나”(서울경제)라고 빈정대는 것은 겉옷뿐만 아니라 속까지도 바뀌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이 바라는 제3의 물결에 합류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의 자주적 단결권도 거부하는 상황에서 “건설노조, 내달 마지막 주 총파업”(서울경제)을 예고하고 있다. 정장차림의 양복은 결국 투쟁의 머리띠와 투쟁복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운동은 죽을 것이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 64주년 기념, 사회통합 역할 하겠다.”(매일경제)고 주장하지만 사회통합을 깨트리는 세력과 통합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부터 돌아 볼 일이다.
“KBS, 새 노조와 단체교섭 응하라”(경향신문, 한겨레)는 판결이 나왔다. 다른 자본신문들은 한 곳도 기사를 싣지 않았다. 정권이 KBS를 장악하면서 이에 굴복한 노조에 반발한 새로운 노조다. 물론 그들 다수는 이전 노조의 소속원들이었다. 이제 진정한 복수노조 시대에 돌입했다. 투쟁을 포기하고 어용으로 남기를 바라는 세력들은 별도의 노조를 하면 된다. 전체를 하나로 묶어 어용화하려는 시도는 중단되어야 한다. 어용하고 싶은 세력들만 모여서 어용노조를 하면 된다. 이와 관련 해 내년 복수노조시대를 앞두고 노조분열이니 노동운동 약화를 주장하면서 복수노조를 반대하고 또 다시 유예를 바라는 일부 대공장 노조간부들의 태도는 매우 잘못이다. KBS새로운 노조는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과 자본독재에 맞서 새로운 투쟁을 복원할 때다.
“임신-출산 경제활동 중단 여성 연 3000명에 맞춤형 일자리 제공”(동아일보)을 얘기하지만 이는 생색내기 고용정책이거나 선거용이다. “취업 때 최대 장애물은 학벌”(서울신문)과 마찬가지로 남녀차별은 일반적이다. “대기업 35%, 올 인턴 사원 채용”(세계일보), “대기업 142곳 인턴 1만명 채용”(중앙일보, 국민일보, 서울신문) 역시 비정규직을 통한 차별화 모습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고용 늘린 곳 금리 인하”(한국경제), “건설 살려 일자리 늘린다.”(파이낸셜 뉴스)고 한다. 그러나 실업과 고용불안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갈 잃은 88만원 세대 온 몸으로 저항선언, 고대생 자퇴 대자보”(경향신문)는 그 상징성이다.
“7년째 ‘알바’해도 마련하기 힘든 등록금”(동아일보), “하루하루 어떻게 버텼는데 퇴출이라뇨. 성원건설 노동자”(머니투데이)들에게 장밋빛 공약이나 선전들은 소용이 없다. “OECD, 한국, 비정규직 법적 보호 수준 미흡”(국민일보, 세계일보, 경향신문)하다고 발표했다. 물론 조선, 중앙, 동아 등 자본신문들은 이 기사를 외면했다. OECD도 좌파 빨갱이로 몰고 싶은 모양이다. “일자리 세대갈등 해법 적극 모색할 때”(한국경제)라는 주장은 갈등의 계급적 본질을 세대 간 갈등으로 왜곡하고 있다. “대학 안 가도 잘 살게 해야 한다”(중앙일보) 주장 역시 현실로 동떨어진 입발림 소리다. 비정규직 철폐, 현장의 임금차별 해소,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라는 법적 제도적 장치 없이는 그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2010.3.11,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