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토론방
천안함 사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편의상 시기 구분을 한다면 1시기가 첫 1~2주 동안 우왕좌왕하던 시기, 2시기는 진상조사를 한다며 ‘북한 공격설’을 유포하던 시기, 3시기는 민군 합동조사단이 ‘북한 공격’으로 결론을 내리고 대대적인 반북 여론전을 펼친 시기, 4시기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에서 국제 외교전을 펼친 시기로 나눠볼 수 있다. 지금은 한미연합 전쟁훈련으로 한반도에서 군사력을 동원한 무력 시위의 단계인 5시기라 할 수 있다. 5시기는 이대로 전면전으로 발전하거나, 어느 한 쪽이 무릎을 꿇고 평화를 되찾거나 하는 갈림길에 놓인 시기다.
외교전의 패배로 명분 잃은 MB와 미국
외교전이 펼쳐진 4시기부터 살펴보자.
7월 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거듭되는 진통 끝에 실속 없는 의장성명을 내놓았다. 작년 북한의 ‘은하2호’ 인공위성 발사 때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발사’라는 표현을 통해 북한이 발사한 것이 미사일인지, 인공위성인지 밝히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공격을 개탄’한다는 표현을 통해 누가 공격했는지 밝히지 못했다. 천안함 사고를 미제 사건으로 결론내린 것이다.
안보리 의장 성명이 이런 실속 없는 내용으로 채워진 것은 왜일까? 우선 안보리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의 적극적인 외교전으로 인해 북한의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나아가 중국, 러시아도 미국의 주장에 반대하고 나섰다.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 외교전을 무승부로 평가할 수는 없다. 7월 18일자 일본 아사히 신문은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한국 정부 내에서도 “외교적으로 패배했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명박 정부와 미국의 패배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일단 이명박 정부와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안을 채택하여 북한을 강력히 응징하려 하였다. 그러나 결의안은 무산됐고 구속력 없는 의장 성명에 그쳤다. 또한 북한을 공격 주체로 명시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결론을 내림으로써 북한을 응징하기는커녕 비난하지도 못했다. 표현에서도 보면 이명박 정부의 주장은 ‘고려(in view of)’하지만 북한의 주장은 ‘주목(take note of)’한다고 표현하여 북한의 주장에 좀 더 무게를 실어준 것 아닌가 하는 분석도 가능하다.
유엔 안보리에 이어 아세안지역안보포럼도 거의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7월 24일 발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의장 성명은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을 지지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됐으며 나아가 6자회담 복귀를 권고하여 ‘선 천안함, 후 6자회담’을 주장하는 이명박 정부와 미국에게 부담을 주었다. 2차전도 역시 이명박 정부와 미국의 패배로 끝난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미국이 두 차례에 걸친 국제 외교전에서 연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천안함 사고 관련 이명박 정부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 국민들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전 세계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월 28일 방한한 중국 원자바오 총리에게 어뢰 설계도를 보여주며 북한 공격임을 설득하려 하였다. 그러나 6월 29일 천안함 침몰 원인 조사결과 설명회에서 합조단 관계자는 어뢰 설계도가 실수로 잘못 인쇄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엉뚱한 어뢰 설계도를 가지고 일국의 대통령이 중국 총리를 설득한 꼴이다. 국민들 사이에서 ‘국제 사기’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7월 27일 한겨레는 러시아 전문가 조사단의 보고서 요약본을 입수해 보도하였다. 핵심 내용은 천안함 사고 원인은 어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천안함이 연안 항해 중 그물에 걸려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기뢰를 건드렸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명박 정부 주장에 심각한 타격이 되는 내용이다. 또 보도에 따르면 이 보고서가 이미 중국과 미국에도 전달됐다고 한다. 보고서의 내용은 이미 7월 9일에 즈음해서 여러 언론에 보도되었으므로 결국 러시아 보고서 내용이 유엔 안보리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거듭되는 외교전의 패배로 이명박 정부와 미국은 대북 응징의 명분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이제 와서 대북 압박을 중단하면 패배를 자인하는 꼴이므로 결코 멈출 수 없다. 원래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눈덩이처럼 커져서 본인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불굴의 의지’인가 ‘마지막 발악’인가
이명박 정부와 미국은 기어이 한미연합 전쟁훈련 ‘불굴의 의지’를 진행하였다. 이 훈련에는 일본 자위대까지 참여하였다. 34년 만의 최대 규모라는 이 훈련은 동북아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나아가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2+2회담)에서 대북 강경노선을 천명하고 독자적 경제제재까지 언급하여 당분간 동북아 분위기가 험악할 예정이다.
이 훈련에 대해 중국은 군장성이 “미 항공모함이 서해에 들어오면 인민해방군 훈련용 과녁이 될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미 중국은 서해에서 실탄사격훈련을 진행하였고 러시아도 극동지역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진행하였다. 동북아 주요국가들인 6자회담 참가국 가운데 북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반도 인근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진행한 것이다. 마치 100여 년 전에 한반도와 동북아를 차지하기 위해 이 땅을 초토화시킨 러일전쟁, 청일전쟁의 전야를 보는 듯하다.
물론 현재 그 어느 나라도 전면전을 표명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한반도가 정전상태에 있는 한 대규모 병력이 집결해 있는 와중에 약간의 충돌이라도 발생한다면 언제든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쟁훈련 와중에 또 군함이 침몰하거나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하자. 원인을 규명하기도 전에 흥분하여 전면전을 개시할 수도 있는 일이다.
현재의 위기 국면을 두고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경향신문 7월 25일자에서 “한반도를 축으로 미국과 중국은 한국과 북한을 앞세워 긴장을 고조시키고, 남북은 그 긴장을 국내 정치적 목적에 활용하고 있다”면서 “신냉전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반도에 심각한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양교수의 주장은 맞지만 위의 표현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다.
먼저 중국이 북한을 앞세웠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반대로 북한이 중국을 앞세운 모양새다. 전쟁훈련도 북한은 가만히 있는데 중국이 나서서 했으며 강경 발언도 중국이 나서서 하고 있다. 덩치 큰 나라 중심으로 보면 똑같은 현상을 봐도 반대로 이해할 수 있다.
다음으로 남북이 긴장을 국내 정치적 목적에 활용한다고 했는데 이명박 정부야 정권 위기를 막기 위해 안보정국을 조성하고 있는 게 맞지만 북한은 현재 ‘경제강국’ 건설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긴장 국면이 좋을 게 없다. 이 때문에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이 나오자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우리는 평등한 6자회담을 통해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일관되게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빨리 6자회담을 재개하자는 신호다.
물론 이명박 정부와 미국이 당분간은 전쟁훈련과 제재를 한다며 정세를 긴장시킬 것이므로 6자회담 재개는 요원한 상태다. 평화협정 논의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떻게 나올까?
‘우리식의 보복성전’이 무엇인가
아직 행동에 나서지 않았지만 북한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북한은 7월 24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필요한 임의의 시기에 핵억제력에 기초한 우리식의 보복성전을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인민무력부장 김영춘은 7월 26일 “미국의 가증되는 핵위협에 대처하여 우리는 새롭게 발전된 방법으로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거듭된 ‘핵억제력’이란 표현을 두고 3차 핵실험을 예고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새롭게 발전된’ ‘핵억제력’은 아마 지난 두 차례 핵실험을 통해 보여준 핵기술보다 진일보한 핵기술을 보여주겠다는 의미도 되겠다. 따라서 북한이 이미 발표한 핵융합기술이 결합된 핵실험, 즉 수소폭탄 실험을 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 작년에 북한이 경고했듯이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을 할 수도 있다.
북한의 군사적 행동은 두 가지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당면한 전쟁 위기에 쐐기를 박는 것이다. 만약 전쟁을 일으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어 감히 전쟁을 못 일으키게 한다는 것, 이것이 북한식 “전쟁하지 않고 전쟁을 이기는 법”이다. 또 하나는 전 세계 면전에서 더 망신당하기 전에 빨리 대화의 자리에 나오라는 것이다. 북한이 국방력을 과시할 때마다 미국의 ‘초강대국’ 지위는 흔들리고 영향력은 사라진다. 더 무너지기 전에 대화에 나와 평화회담을 진행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게 미국 입장에서도 좋을 것이라는 무언의 경고인 셈이다.
북한이 군사행동에 나서면 미국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한반도에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북한의 강력한 군사행동이 있었고 이는 결국 미국과의 협상으로 이어졌다는 전례를 볼 때, 이번에도 결국 북한이 주장한 ‘우리식 보복성전’ 이후 미국이 대화 자리에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미국이 이번 한미연합 전쟁훈련을 하는 과정에서도 북한과 중국 눈치를 보느라 국제적 망신을 이미 당한 상태다. 처음에 6월 말에 하겠다던 훈련이 수차례 연기되면서 결국 7월 말에 하게 되었고, 핵항공모함을 동원하는 문제를 가지고도 혼란이 있었으며, 중국의 엄포에 눌려 결국 훈련장소를 서해가 아닌 동해로 잡는 등 미국은 온갖 조롱을 당하면서도 북한과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다. 언제든지 빠져나갈 명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북미 장성급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을 북한과 하고 있어 이를 통해 언제든지 협상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
자기 무덤을 판 MB, 결국 버림받는가
문제는 이명박 정부다. 미국은 천안함 사고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발표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해 왔다. 따라서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한국 정부의 조사에 문제를 제기하고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다. 한마디로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어떨까? 만약 미국이 북한과 평화회담에 들어가면 이명박 정부는 매우 곤란해진다. 계속 대북 응징을 주장하자니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에게까지 버림받을 수 있고 이는 국내 차원에서 봐도 국민들의 반감과 저항을 불러 올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을 따라서 대화에 나서기도 쉽지는 않다. 지금까지 천안함 사고를 북한 공격으로 규정하고 국제사회에 북한 압박을 호소해왔는데 이제 와서 자기 주장을 180도 뒤집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보수세력의 반발도 심각할 것이다.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2+2회담)에서 “출구전략은 아직 검토할 단계가 아니다”고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은 호언장담했다. 정부 당국이 아직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천안함 강경 대응이 부메랑이 되어 이명박 정부의 목을 겨눌 수도 있음을 현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택할 길은 두 가지로 전망된다.
첫 번째 길은 국제사회의 고립을 각오하고 끝까지 반북강경노선을 걷는 경우다. 이 경우 미국이 부담을 느끼고 중국이 제안한 국제진상조사단 구성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 조사단의 진상조사만으로도 정부 발표의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국제진사조사단이 활동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이명박 정부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또 다른 길은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사태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천안함 문제를 6자회담에서 다루는 것을 전제로 6자회담을 재개하는데 합의하면서 자연스레 대화에 합류하는 방식이다. 물론 6자회담에서 천안함 문제는 거의 언급되지도 않을 것이므로 사실상 천안함 문제를 흐지부지 정리하자는 것이다.
지금 북한은 북미 장성급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검열단 파견’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두 번째 길은 북한의 양보 없이는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즉, 이 경우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게 약점을 잡히고 계속 끌려 다닐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국내 보수세력들도 강하게 반발하면서 권력 유지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가 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천안함 사고와 관련하여 숨기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끊임없이 말바꾸기와 억지 논리, 거짓말을 지속하는 것을 보면 정권 유지에 심각한 타격이 되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사고.
현 정부가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면 이를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그것이 망자의 한을 푸는 진정한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