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0.4.18.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하여.hwp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하여!

불교의 발상지는 인도이다!

지금우리가 불교의 발상지가 인도라고는 말하나, 부처님께서 修道를 위하여 여행하신 곳은 현대국가의 인도라는 한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있으며, 현재 대한민국의 불자들이 인정하는 세계적인 불교 지도자이신 다라이라마님의 국적 또한 인도가 아님에도, 대한민국 불자들은 다라이라마님을 세계불교지도자로 존경하고 있으며, 가톨릭의 교황님 정도로 인정하고 있는 현실이다.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는 전파된 나라마다 고유한 형태로 형성되어 전파 되었으며, 한국불교는 중국을 거쳐 들어온 불교와 인도로부터 직접 들어온 불교의 양상이 어느 정도 다름을 우리는 알고 있으며, 불교는 타 종교와 달리 생활 종교로서 무신론에 가까우며,

불교를 창시한 부처님께서 왕자님으로 태어나신 때문인지는 모르나, 종교영역확장을 위한 전쟁을 하지 않은 종교라는 특색을 가지고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보다는, 실천을 통한 현실을 중요시 하고, 사실을 볼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을 교리로 한다는 사실은 불교수행의 기본이다!

나는 늧깍기로서 나름대로 불교를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학창시절 국사공부를 통하여 익혔던 한국불교의 발달과정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았으며, 중국 사람들이 인정하였듯이, 한국불교문화가 중국의 불교문화보다도 더 발전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지금부터라도 한국불교의 자성을 통하여 중국의 불교 보다 더 발전된 불교문화를 완성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사실 나는 불교에 대하여 내가 불교에 입문한 햇수에 비하여 상당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사실은, 나의 글을 통하여 한국불자라면 누구나 알고계시는 년하의 스님을 스승으로 맞아 寶華라는 법명까지 받을 수 있었던 사실이며, 그로 인하여 나의 “禪”공부는 “생활이 곧 禪”이며, “생활이 곧 修行”이라는 이론을 창설하게 되었으며, 일부 큰스님들이 나와 같은 이론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또한 나는 입문과 동시에 나의 성격에 걸 맞는 聲樂을 하시는 스님을 만나,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부르는 讚佛歌를 통하여 부처님에 대한 나의 신심을 키웠으며, 그로 인하여 나는 나보다 훨씬 먼저 입문한 다른 신자들보다도, 信心에 있어서나, 修行能力에 있어서나, 뒤지지 않다고 느껴지는 참 불교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던 중에, 은사 스님으로부터 도사라는 칭호까지 받았다!

수행 중에 불교가 생활 종교라고 하여서 너무나도 세속화 되어있다는 사실이 한국불교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 근원을 추적하여본 결과 너무나도 큰 문제이어서 지금까지 말을 삼가 하여왔으나, 지금이 대한민국의 미래와 호국종교인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하여, 아직 완성되지 못한 이론이지만, 작심하고 말을 하여야 할 때가 왔다고 믿어서, 언론에서 4월30일로 봉은사 사태에 대한 난상토론일자가 보도되자, 급하게 본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토인비 같은 유럽의 미래학자와 아인슈타인 같은 큰 과학자가 까지도, 본국에서 현대판 왕따를 당하면서까지, 불교가 과학적인 종교임을 인정 하였으며, 동양문화가 앞으로 지구를 정신적으로 지배 할 것임을 예고하였으며, 동양문화의 중심이 불교라는 사실까지를 발언하였음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며, 세계 삼대 천재들 까지도 무신론을 주장 한 사실은, 그 분들이 최소한 창조론자들은 아니라는 사실이며, 이는 불교문화의 세계정신문화를 지배 할 것이라는 이론에 어느 정도 힘을 실어 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의학적으로 생각하여보자,

해부의학이라고 칭하여지는 서양의학의 한계는 이미 노출이 되었으며, 그에관한 연구는 계속되고는 있으나, 인간구조의 핵심인 뇌 부분의 질병에 대하여서는 해부의학의 힘으로는 아직 멀고도 먼 길이라는 사실은 의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며, 이는 서양의학을 폄하하기 위한 발언이 아니라, 정적의학이라 말할 수 있는 동양의학의 가능성을 말함이며, 현실적으로 뇌 부분을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시술하여온 동양의학도 서양의학을 능가 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있다는 사실을 말함이다.

그렇다면 동양의학은 어디까지 왔으며, 어느 나라가 동양의학의 중심에 있는 것인가? 동양문화는 불교문화가 중심이라면, 동양의학은 중국의학이 중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한국의 동양의학은 어떠한가?

그 점에 착안하여 나는 뒤 늧게 사업을 준비 중에 있으며, 그 사업을 함평노씨 문중에 헌납 하고자 하고 있으며, 그로인하여 대한민국의 국익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만약에 동양문화가 세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 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미래를 위하여 무었을 준비하여야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그 에 대비하여 우리는 한의학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겠지만, 이에 대하여서는 추후에 거론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한국불교의 미래에 대하여만 발언하고자 한다.

한국불교의 가야할 길에 대하여 나는 한마디로 불교의 제도를 혁명적인 차원에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조500년과 일제강점기의 36년, 해방이후의 법란 등을 통하여 전통적으로 어둡고 소극적인 불교에서, 밝고 미래지향적이며, 시대의 발전에 부응하는 적극적인 불교사상으로의 전향이 필요하다는 나의 주장이며, 기복신앙위주에서 현대과학적인 요소가 첨가된 교리위주신앙으로의 전환이 필요하고, 어려울 때나 외로울 때만 찾아가는 신앙에서, 생활 속의 불교신앙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며, 그 사상이 바로 부처님의 주 사상이라는 나의 주장이다.

돌이켜 보건데, 한국불교가 한때는 중국불교보다 더 융성할 때가 있었다는 사실은 중국 사람들도 인정하고 있음에도, 한국불교가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근대한국불교의 역사를 통하여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어야 할 것인가?

나는 스님들이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스님이라 함은 스님들이 음주를 한다든지, 축첩한다는 사실과, 경제적인 욕심을 챙긴다는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사실을 징벌하자는 주장도 아니며, 또한 당대의 스님들만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며, 한국불교의 역사를 통한 많은 스님님들을 총괄적으로 지칭하여 부르는 스님들을 말함이다.

나의 은사스님도 술을 종종 마신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으나, 그 사실이 나의 은사스님을 폄하하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주눅들지 말고 떳떳하게 마시자는 주장일 뿐이다.

스님을 양성하는 교육제도스님들의 문중을 떠난 위계질서확립과, 수행하는 작은 방법의 차이해소와, 스님으로서의 품위 유지방법, 불자들의 신앙심제고방법, 신앙심의 표현방법, 법회 등의 전례방법, 한글화 등의 기도문의 전폭적인 손질, 음악법회의 개발, 이조시대의 잔재인 신도 증을 폐지하고 다른 방법으로 대체 하는 등의, 제도적으로 포교방법을 혁명적으로 바꾸자는 나의 주장이며,

그 첮번째 방법으로서 종단의 지도자를 한분으로 할 것을 정식으로 제안하는 바이다!

속된 표현으로 하자면, 총무원장 자리를 없애고, 종정스님이 한국불교의 간판으로서 모든 불사를 일사불란하게 친정하시도록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나의 주장이다.

처음에는 어렵고, 힘든 일일 것이나, 한국불교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하여서는 반드시 바꾸어야 한다는 나의 주장이며, 미래 동양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대비하여, 불교문화의 발전에 속도가 필요하고, 스님 탓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불교문화의 정비를, 혁명적으로 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나의 주장은 현재의 총무원장스님을 겨냥하여 발언하는 것이 아니며, 침체된 한국불교의 밝은 미래를 위한 충정이라는 사실을 총무원장 스님께서도 아시리라 믿는다.

이번 봉은사 사태를 예로 들자면,

총무원장스님도 수행하시는 분이시다.

수행 중인 중책을 맡으신 스님이 정치인과 아무데서나 언제나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설사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한국불교의 최고위 지도자로서의 어느 정도의 품위는 지켜야 하였을 것이며, 활동성 있는 스님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며, 종교의 위엄을 지키기 위하여 서라도, 지도자가 직접 그런 일을 맞아 한다는 사실은, 제도 자체가 발전의 폐해일 뿐 이라는 주장이며,

봉은사 사태는 단순한 직영사찰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부탁할 일로 반드시 만나야만 할 일이 있다 할지라도, 총무원장스님이 총무원 근처에 상을 차리고 식사를 하실 수도 있었을 것임에도 계속하여 그런 방법을 사용하여 왔다는 사실일 것이나, 나의 생각으로는 종단 사무실 내에서 상을 보던지, 아니면 사찰음식전문스님이 경영하시는 바루라는 사찰음식점이 바로 종단 앞에 있으니, 불교의 상징성으로나 한국불교의 건전함을 소개하는 의미로서 좋은 장소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발상의 전환이 너무나도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봉은사 사태로 인하여 총무원장 스님께서는, 성직자의 수행방법에 대하여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많은 약점을 노출시켰으며,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인 면에서 객관적인 타당성이 결여 된 상황에서, 종법을 앞세워 봉은사를 직영으로 변환하였다는 사실은, 미래 한국불교의 존폐에 관한 문제이지, 단순한 봉은사 직영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는 나의 주장이다.

앞에서 말하였지만 나는 한국불교의 신도들이 성전인 법당을 우습게 알고 있으며, 법당 안에서 휴대전화가 온 것을 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법당 안에서 전화를 걸어서 큰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법당 안이 자기 집 안방의 친교장소인양, 세상 돌아가는 온갖 잡다한 이야기들을 다하고 있으며,

신앙심을 현금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인지, 10일조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나는 가급적 만원권지폐로 시주하는데, 천원권지폐로 시주하는 보살님들이 시비들을 할 수가 있다는 사실 또한 모두가 스님들의 잘못이라는 사실이다.

이 또한 당대의 스님의 잘못이 아니라, 한국불교가 음침하고 소극적으로 역사상 계속 내려 왔기 때문에, 한국불교의 역사가 그리 내려오도록 방치한 역대 스님들의 책임 이라는 나의 주장이다.

스님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신도들을 교육시킨다면, 신도들이 법당 안에서 그리 함부로 놀지 않았을 것이며, 신앙심이 충만한 신도라면 남을 해하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을 것임에도, 내가 바라보는 불자들은 남을 해하는 행동을, 피해를 보는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당당히 하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서, 자기 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장면을 촬영까지 한다는 파렴치함에 대한 신앙적인 책임은, 모두가 스님들에게 있다는 나의 주장이다.

다시 말하자면 불교신도들이 신앙심이 부족하여서 그리 하는 것이 아니고, 신앙에 대한 이해와 신앙의 표현 방법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이는 한국불교가 전통적으로 신비주의와 기복신앙위주로 포교한 사실 때문이며, 신앙의 표현방법에 대한 개발이 부족하면서 전통에만 의지하고, 한국불교가 눈에 보이지 않게 쇠퇴하고 있다는 커다란 문제점에 대하여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로서 현재 한국불교는 선진열강제국들 속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며, 불교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사건이 현실적으로 도래 한다면, 한국불교를 세계열강에 포교하기는커녕, 한국불교와 대한민국국민들의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지게 될 것이다.

사실 나는 지금 김일성 정치범수용소의 탄압보다 더한 탄압 속에서, 5분의 인터넷 사용도 마음대로 할 수없는 죽음의 공포 속에 살고 있으나,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하여 긴박한 시간들로 이글을 쓰고 있는 현실이고, 연신내 지구대패트롤카가 나오기만 하면 잡아가 버린다는 협박을, 패트롤카에서 마이크로 큰소리로 하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무슨 이유로 나를 잡아간다고 마이크로 협박하는지는 모르겠으나, 4월30일의 토론회에는 반드시 참석 할 것이다.

또한 나는 나의 숙원사업으로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하여, 제목을 한국불교의 나아갈 길이라 정하고, 상당한 기간을 공부하여왔으며, 금명간 나의 의견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받을 계획이며, 이 글은 자료를 모두 도난당한 상태에서 생각으로만 하는 극히 일부로서, 나의 제한된 현실 때문에 자료들이 복구된다면 나의 공부에 급진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문제는 정치문제이고, 자기로서는 꽤나 큰 정치인이라고 여기는 정치인이, 자기본당 주임신부에게 인정도 받지 못 하였을 정도라면, 그분은 정치인이기에 앞서 개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자기 본당의 주임신부에게 먼저 신임을 얻어야 할 것이지, 남의 종교를 폄하하며 관여할 일이 먼저는 아니라는 나의 주장이다.

그런 분을 접대한 총무원장 스님 또한 관례라고는 하지만, 한국불교의 최고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지켰어야 하였다는 주장이며, 한국불교는 총무원장 스님의 희생적인 용단이 필요로 하는 중요한 시기임을 나는 주장한다!

4월30일 오후2시 조계사 옆, 불교역사박물관 지하 공연장!

모두 나오시어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한 의견을 모읍시다!

110-600 서울광화문우체국사서함1073호

노 한 후(르타 - rta)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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