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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책읽는 노동자]]></title>
		<link>http://www.nodong.org/metabbs/metabbs.php/board/book</link>
		<description>The latest posts from 책읽는 노동자</description>
		<pubDate>Thu, 03 Jul 2008 13:38:33 +0900</pubDate>
		<item>
			<title><![CDATA[2008년 7월 권장도서 목록]]></title>
			<link>http://www.nodong.org/metabbs/metabbs.php/post/36286</link>
			<description><![CDATA[
	<b> 2008년 7월 권장도서 목록</b>

<img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libro/book_img/6713/0100006103702_03.jpg"> <b> ‘세계를 뒤흔든 열흘' : 존 리드 지음 / 서찬석 옮김 / 책갈피 </b>

지금까지 러시아 혁명을 다룬 책들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러시아 혁명을 ‘피의 강물이 흘러넘친 소수의 쿠데타’라고 주장하거나, 볼셰비키라는 소수 지도자들에게만 주목함으로써 러시아 혁명의 진실을 올바르게 다루고 있지 못했다. 이 책은 기자인 저자가 러시아 혁명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직접 경험한 것을 생생하게 기록함으로써 당시의 상황을 사실대로 그려내고 있다. “인류가 시도한 가장 경이로운 모험”과 현장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고 싶은 독자라면 누구나 재밌게 읽을 수 있다. 

<B><img src="http://bookimg.naver.com/hash_coverimg/aladdin/cover/cover/8/9/3/2/8932018146_1.jpg"> ‘친절한 복희씨' :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b>

표제작인 '친절한 복희씨'를 비롯해 9편의 단편들은 대부분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노인들의 신산한 삶을 그린다. 곰삭은 한이나 상처를 연상시키는 알 수 없는 그리움에 젖어 있고, 스멀스멀 육체에 기어든 병까지 감수해야 하는 그들. 그러나 이토록 보잘것없는 삶을, 작가는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나를 위로해준 것들이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는 말을 덧붙이며, 따뜻하게 보듬고 위로한다.

<b>  
<img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booktopia/book_down/BookImg/Detail/0110/01100707.gif"> ‘누워서 부르는 사랑노래' : 김해화 지음 / 북토피아 </b>

1984년 실천문학사의 '14인 신인작품집'에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해화 시인은 노동자 문학운동을 해왔던 동지들과 침체된 노동자문학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일과시' 동인을 만들었다. 이어 다섯 권의 동인시집을 내면서 노동자문학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고 있다. 김해화 시인의 작품 "누워서 부르는 사랑노래"속으로 들어가보자!

<b> 
<img src="http://bookimg.naver.com/hash_coverimg/aladdin/cover/cover/8/9/7/6/8976823133_1.jpg"> ‘이 영화를 보라(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 ; 고미숙 지음 / 그린비 </b>

괴물, 서편제, 황산벌 등 가장 대중적인 한국영화 6편으로 우리네의 근대성의 모습을 성찰하였다. 고미숙의 문체는 경쾌하고 발랄하다. 그것은 그가 고전전문가이면서 니체와 들뢰즈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미 『열하일기』를 대중화시킨 그가 이번에는 한국영화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img src="http://bookimg.naver.com/hash_coverimg/aladdin/cover/cover/8/9/7/1/897199309X_1.jpg"> <b>‘서울은 깊다(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 전우용 지음 / 돌베개</b>

서울전문가인 전우용의 서울을 주제로 한 역사문화박물지이다. 그의 시선은 따뜻하고, 그의 눈빛은 날카로우며, 그의 상상력은 드높다. 그의 이러한 자질에 의해 서울은 박제품에서 역사와 생활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편안한 마음으로 읽다보면 어느새 끝에 다다르고, 책을 덮을 즈음 아쉬움이 밀려온다. ]]></description>
			<author><![CDATA[교선문화실]]></author>
			<pubDate>Thu, 03 Jul 2008 13:38:33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객지]를 읽고 - 김민영]]></title>
			<link>http://www.nodong.org/metabbs/metabbs.php/post/36200</link>
			<description><![CDATA[
	나는 교육노동자다. 그리고 3월 말에 지역에 지회장이 되었다. 지회장이 되기를 많은 사람들이 주저했다. 그건 그만큼 바쁘고 어렵기 때문이리라... 그치만 나는 없는 것보다는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결심을 했다. 부족하지만 해보겠다고

 

늦게 시작해서 준비된 집행부는 없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일게 된 것은 집행부를 이제 조금 꾸렸는데 그 집행부들과 함께 읽고 싶어서 독후감을 꼭 써서 책을 받아야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그 중 제일 쉬워 보이는 소설로 선택을 했다.^^

그렇지만 책을 선정하고 객지를 다 읽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얼른 읽어서 독후감을 써서 책을 받아봐야겠다는 의무감으로 읽기 시작해서인지 책이 당기지는 않았다(물론 독후감을 다쓴다고 책을 주는 건 아닌데, 착각을 하고있다^^)

그리고 매일 매일의 촛불, 지회 행사.. 학교일들로 책을 읽는 건 계속 한참 늘어지고 또 늘어졌다.

그렇지만 중반부 이상가니까 조금씩 당겨져서 한번에 읽었다. 6월의 마지막 날에

 

교육노동자라면 난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우리 반에서 힘없는 아이들 편에서 살고 있는가, 더 아껴주고 있는가?) 그렇지만 교사들은 파업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그건 아마 어린시절 나처럼 노동자들은 게으르고 무능력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을 테고 교육노동여건보다 더 힘든 노동현장을 못느껴본 이유일테고 학교에서 제대로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리라...

 

나도 학교에서 파업에 대해 배운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는 노동자들이 일으킨 거라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힘없고 가진 것 없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단결하여 파업하는 것일게다. 그것을 안지는 참 얼마되지 않았다. 많은 교사들이 이 부분에 대해 공감하고 정당한 권리로 가르쳐야 하는데 아직도 그부분은 부족하다.

 

[객지]를 읽으면서 노동자들이 뭉치기 시작할 때 요구를 할 때 참 뜨거웠고 그래서 승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황석영씨가 리얼리즘에 바탕을 두어 글을 쓴다는 작가의 말을 볼 때는 결국 패배하겠구나(대부분 승리하지 못해서)라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승리를 위한 마지막 의지와 열정이 보면서 쉽사리 실패를 단정지을 수 없었고 난 노동자이기에 우리 싸움이 꼭 승리했을 거라 여기고 희망한다.

 

1970년이나 2008년이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40년전이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이윤을 빼내기 위한 착취의 모습이나 단결을 금가게 하는 회유의 모습이나 중립적인 체 하지만 자본의 편에 선 경찰이나 달라진게 하나도 없다. 너아니어도 쓸사람 많다는 자본가들의 생각도 지금이나 그때나 노동자들이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본다.

 

객지와 같은 "내 한몸 살기두 어려운 세상"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동혁이 가진 의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지금도 객지에 나오는 대위, 동혁처럼 살고 있는 현재의 사람들(남편 포함)에게도 응원의 메세지를 함께 보낸다.

더 힘든 노동현장에서 단결을 외치며 싸우고 있는 동지들에게 또 우리들에게...우리는 꼭 승리할거라고..

]]></description>
			<author><![CDATA[교선문화실]]></author>
			<pubDate>Wed, 02 Jul 2008 21:41:20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객지]를 읽고 - 김형수]]></title>
			<link>http://www.nodong.org/metabbs/metabbs.php/post/36199</link>
			<description><![CDATA[
	황석영의 「객지」




1

  1970년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 날이다. 청계피복 공장에서 피를 토해가며 일하는 여공들의 처지를 늘 가슴 아파한 열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차비를 털어 굶주린 여공들에겐 풀빵을 사 먹이고 본인은 걸어가기 일쑤였고, 여공들을 도울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 돈 되는 미싱사를 마다하고 재단사가 되었다. 근로기준법을 읽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근로기준법 공부와 함께, 뜻 맞는 노동자를 모아 바보회를 조직하여 노동청에 진정서를 넣은 것도 좀 더 인간다운 조건에서 노동하길 바라는 열사의 진정어린 진심이다.

  열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도 꿈쩍하지 않는 견고한 벽과 같은 현실은 열사에게 깊은 절망을 안겨주었으리라.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일한 만큼 존중받길 바라는 열사의 소박한 마음은 현실 앞에서 분노로 변하였다. 그 분노는 죽어서라도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승화되었다. 열사의 죽음은 노동조합이 없던 시절, 시대를 가른 한 점 불꽃이었다.

  황석영의 「객지」는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 이듬해 씌어진 소설이다. 소설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엄혹한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봐도 의미있는 소설이라 생각된다.







2

  「객지」는 어느 간석지 공사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건설노동자의 일상, 노동조건, 쟁의에 이르는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산업화정책에 따라 농촌이 피폐화되고,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사람들은 공사장으로 찾아든다.

  인부들은 법정 임금에 한참 미달되는 임금을 받고, 간조오(전표를 현금으로 바꾸는 날)는 간격이 보름이나 돼 대부분이 현금 없이 지낼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전표를 헐값에 팔아 일용품을 사든지 전표를 원래 가격보다 싸게 함바의 숙식대로 치르는 형편이고, 서기들은 전표로 부당한 이윤을 취한다.

  대부분의 객지 인부들은 함바와 서기, 그리고 그들이 경영하는 매점에 이삼천 원 정도의 빚을 지고 있다. 하루 품삯으로 받는 130원짜리 전표를 110원에 현금과 교환하여 그 중 40원을 숙박비로, 60원은 하루 식비로 내고 나면 10원 밖에 남지 않는데, 담배나 술값 등의 잡비 때문에 빚을 지게 되어 갚아야 할 작업량에 묶이게 된다. 다른 일터를 찾아 뜨고 싶어도 갈 수가 없게 되는 셈이다.

  열악한 노동상황에서 처우개선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쟁의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객지」에는 동혁과 대위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들이 파업을 조직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만나고 불만을 토로하고 단체 행동으로 끌고 나가는 과정이 긴박하게 잘 그려져 있다. 국회의원의 방문일을 기점으로 하여 들어간 파업은 회사 측의 교활한 책동으로 실패로 끝난다.

  개인적으론 실패한 쟁의를 보며 아쉬움이 가득한 채 책을 덮었는데, 실제 현실이 그랬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진 싸움이 이긴 싸움보다 몇 배나 많고, 수없이 지는 과정에서 마침내 이겨온 과정이 노동자의 투쟁이지 않을까?







3

  70년대 노동조합이 전무할 때의 노동자 현실과 지금의 노동자의 현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기륭전자는 1000일 넘게 싸웠고, 이랜드는 800일 넘게 싸웠고, 화물노동자는 일하면 일할수록 손해라 파업을 했고... 세상이 제 아무리 변해도 일하는 노동자의 처지는 변한 게 참 없다. 살기가 여전히 어려운 것 하며, 어려운 살림살이를 개선하기 위한 투쟁이 승리하기 어려운 것 하며.

  그러나 한편으로 달라진 점도 있다.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면 불수록 노동자의 각성은 높아져 노동자의 요구가 자기 공장 담벼락을 넘어서고 있다. 고용안정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가 돼버렸고, 노동자의 생활적 처지에서 나오는 연대의 토대는 더욱 튼튼해졌다. 힘들게 싸우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외로운 투쟁은 역설적으로 신자유주의를 고립시키고 있다.

  객지의 주인공 동혁이 마지막으로 하는 말,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처럼 내일을 기약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오늘이 이미 희망찬 내일을 일구어가고 있다.

]]></description>
			<author><![CDATA[교선문화실]]></author>
			<pubDate>Wed, 02 Jul 2008 21:40:25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다산의 아버님께]를 읽고 - 오민택]]></title>
			<link>http://www.nodong.org/metabbs/metabbs.php/post/32703</link>
			<description><![CDATA[
	                         정약용과 다산 (“다산의 아버님께”를 읽고)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광주지회 오민택

6월 초, 주간근무를 마치고 집에 가니 책이 도착해 있다. 
5월 권장도서 독후감에 대한 상품을 민주노총에서 보내준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포장을 열어보니 여러 권의 책 중 묘한(?)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온다.
“다산의 아버님께”... 
‘이게 대체 무슨 소리여?’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의문이 이 책과의 눈맞춤 후 첫 느낌이다.

제목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아마도 편지글이리라. 그리고, 편지를 쓴 사람은 타인이리라.
다산은 정약용인데, 다산의 아버님께라면 최소한 정약용과 혈연관계의 사람일 리는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한편으로는 ‘정약용의 아버지가 누구길래 책으로 나올 정도의 편지글을 썼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의문이 들면 확인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책표지를 젖히지 못한 채 바라만 보고, 생각만 하다가 마침내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다.

책장을 넘긴 지 오래지 않아 나의 무지로부터 비롯된 판단은 여지없이 깨지기 시작한다.
‘최소한 혈연관계일 리 없으리라.’는 최소한의 판단마저도 깨져버렸다. 편지글일 것이라는 판단도, 다산의 아버님이 정약용의 아버지일 것이라는 판단도 남김없이 깨져버렸다.
책은 정약용의 둘째 아들 학유가 회갑의 나이에 젊은 시절, 유배지의 아비 정약용을 그리워하며 추억하는 회상기였다.
‘다산’ 또한 쉽게 알고 있는 정약용의 호 다산이 아니라 유배지의 지명이었다.
정약용의 두 번째 유배지인 강진 귤동마을의 뒷산에 차나무가 무성해서 다산이라고 불렸다 한다. 
강진에 있는 ‘다산초당’ 또한 다산에 있는 초당으로 같은 맥락이리라.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아비와 자식간의 애틋한 그리움보다, 200년 전에도 연좌제가 있었구나는 생각이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끝없는 암투는 오늘날에도 과거에도 변함없이 있었구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하기야, 연좌제와 권력의 암투는 권력유지를 위한 권력의 습성이니 사라질 리는 없다.

목민심서와 수원의 화성을 쌓을 때 사용한 거중기를 설계한 사람으로 알려진 정약용은 자신의 형(책에서는 셋째아버님)이 당시에 죽은 학문 즉, 사학이라 하던 서학을 배우고 따르는 천주교인임이 우연찮은 기회에 밝혀지면서 형제라는 이유로 첫 번째 귀양을 가게 된다.
곧 죄가 없음이 밝혀지면서 유배생활이 풀리지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황사영(정약용 큰 형의 사위)의 백서 사건으로 인해 두 번째이자 이 책의 주 내용인 강진으로의 귀양을 가게 된다.
첫 번째나 두 번째나 모두 정약용은 조정에서 금지한 천주학과 관계가 없음이 국문을 통해 밝혀지지만 형제요, 친척이라는 이유로 중형에 처해지는 것이다.
‘너는 죄가 없지만 네 형과 네 조카사위가 나라에서 금한 사학을 공부하고 천주신을 숭배했으니 연고가 있는 너도 죄를 받음이 마땅하다. 다만 직접 숭배하지는 않았으니 목숨만은 살려준다.’
이것이 정약용이 18년의 유배생활을 하게 된 이유이다.
그 이면에는 조정의 실세로 부상하는 정약용을 시기하는 다른 대신들(서인)의 집요한 ‘정약용 죽이기’가 있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불온한 자’라는 꼬리표가 붙음으로 형제는 물론이요, 자식과 친척까지 마땅한 자리에 취업도 하지 못하고, 어디를 가나 감시의 눈초리가 번뜩거리는 요즘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사실을 어릴 적 제도교육권에서는 알려주지 않았을까?
정약용 = 목민심서, 유배 = 강진, 다산초당 식의 단편적인 내용만을 전부인 양 반복해서 주입하는 것일까?
유배의 이유가, 정약용은 죄가 없지만 조정 대신들의 권력싸움의 희생양이었고, 황사영 백서는 그 빌미를 제공했을 뿐이라고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시작된 의문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한 가지 다행한 것은 책의 중간 중간에 삽입된 그림의 시원함이다. 회상을 하는 학유의 마음을 시원스럽게 담아냄으로써 어지러운 머릿속과 활자에 지친 눈을 일시에 시원스레 틔워준다. 비록 그림은 학유의 아픔과 아비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을 담았을지라도...
열여섯의 나이에 아비를 강진으로 떠나보내고, 불툭거리는 피돌기에 마음을 잡지 못하던 학유는 스물 둘의 나이에 아비가 있는 다산으로 향한다.
학유의 집인 소내(두물머리, 양수리)의 한강부터 시작된 길은 금강을 지나고, 소내에서 바라다보이던 도봉산을 닮은 월출산을 지나고, 소내의 강을 닮은 강진만을 지나고, 그리고 두 차례의 국문으로 쇠약해진 몸과 가족과 임금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오른쪽에 마비증상이 있는 아비 정약용이 앉은 다산의 초당이 책장을 넘기는 속도에 따라 흘러간다.

책의 절정은 학연과 학유, 정약용의 두 아들이 좀이 슬고 습기에 눅은 아비의 저작물들을 가을볕에 말리는 부분일 것이다.
책의 모든 부분에 진하게 배어 있는 아비에 대한 그리움과 아비에 대한 자부심은 볕 좋은 날 뜨락에서의 대화로 절정을 이룬다.
멀리 강진 땅에서 18년째 유배생활을 하며 저작한 글발을 통한 부자간의 대화, 그리고 한결같이 아비를 그리는 마음은 같지만 표현이 다르고 처지가 달랐던 형제간의 대화는 비록 오랜 시간, 많은 말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아비의 글이 담긴 한지의 낱장마다에 가을볕과 가을 냄새가 함께 스며들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마지막 책장을 가만히 덮는다.
여전히 마음은 잔잔하다. 하지만 이런 잔잔함은 오래가지 못하고 작업에 열중하며 책을 되새김질 하던 중 열여섯의 학유처럼 피돌기가 튀기 시작한다.
천주학을 사학이라며 극형으로 막았던 200년 전의 임금과 신하들은 비록 겉모양뿐일지라도 천주학의 열렬한 추종자가 200년 후 이 땅의 임금이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런 사태를 알고 그토록 금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다.
문득, 한 어른의 말씀이 생각난다.
“기독교를 처음에 어떻게 전파했을까? 간단해. 우선 환심을 사기 위해서 잘 살지 못하는 나라에 가서 먹을 것, 입을 것을 준단 말이여, 그리고 그 다음에는 성경책을 줘. 공짜로 줄까? 아니지, 성경책을 주고 땅을 가져가. 안 준다고, 안 받는다고 하면 죽이고 가져가.”
어른의 말씀처럼 그렇게 야금야금 들어왔던 천주교는 지금 완전하게 한반도의 남쪽을 빼앗아갔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멈출 수 없다. 또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오직 앞으로만 구른다.
가끔 멈춘 듯 보일 때도 있지만 그것은 더디 가는 것일 뿐, 멈춘 것은 아니다.
비록 지금은 힘의 논리에 밀려 엎드린 채 있지만 역사의 법칙대로 구르기는 계속되고 있다. 속도를 더해가며......
이 책에서 촛불이 횃불이 되어감을, 몰락한 조선의 왕권처럼 미국의 오만한 권력의 종말도 멀지 않았음을 보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description>
			<author><![CDATA[교선문화실]]></author>
			<pubDate>Fri, 13 Jun 2008 15:56:18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2008년 6월 권장도서 목록]]></title>
			<link>http://www.nodong.org/metabbs/metabbs.php/post/32057</link>
			<description><![CDATA[
	<b> 2008년 6월 권장도서 목록

<img src="http://bookimg.naver.com/hash_coverimg/bandi/largeimage/2/4/3/0/2430239.jpg"> ‘푸른 혼' : 김원일 지음 / 이룸 </b>

『푸른 혼』은 ‘민청학련’ 배후로 지목된 ‘인혁당사건’의 진실을 해부한 소설이다. 대가 김원일이 ‘인권’ 문제에 정면 도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그간의 그의 작품 하나하나는 선 굵은 문체를 통해 소외된 개별 인간군상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순간에도 배경에 깔린 사회적 맥락의 무성한 숲을 조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img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libro/book_img/425/106413_8936460161.jpg"> <b> ‘객지' : 황석영 지음 / 창비 </b>

대하소설이나 장편소설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빼어난 중단편을 쓴 작가이다. 작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새롭게 편집된 이 중단편전집은 황석영의 작가적 면모를 되새기는 데 다시없는 도움을 준다.

<b>  
<img src="http://bookimg.naver.com/hash_coverimg/aladdin/cover/cover/8/9/9/0/8990492459_1.jpg"> ‘국경없는 공장' : 하종오 지음 / 삶이보이는창 </b>

다양한 시적 사유를 통해 우리 시대의 바닥을 응시해 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외국인노동자의 삶에 집요하게 초점을 맞춘다. 외국인노동자의 핍진한 삶을 통해 한국사회의 타자에 대한 제국주의적 면모를 보여주는 『국경 없는 공장』은 한국문학사에 새롭게 태어난 ‘다문화사회의 노동시’라 할 만하다.

<b> 
<img src="http://bookimg.naver.com/hash_coverimg/aladdin/cover/cover/8/9/8/7/8987671968_1.jpg"> ‘혁명가-역사의 전복자들' ; 에릭홉스봄 지음 / 김정한 외 옮김 / 길 </b>

에릭 홉스봄이 20세기 역사의 현장에서 몸소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쓴, 일반인이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1960년대에 쓰인 서평과 강연, 짧은 논문들로 구성된 이 책은 일견 시의성을 잃어버린 얘기들로 여겨질 수 있으나 현실 공산주의가 몰락한 오늘날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베를린에서 히틀러의 집권을 경험하고, 쿠바 아바나에서 체 게바라에게 통역을 해주며, 소련에서 스탈린의 시체를 직접 목격한 에릭 홉스봄이 '참여 관찰자'로서 전해주는 통찰들은 단지 당시의 '사건'들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을 짚어낸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img src="http://bookimg.naver.com/hash_coverimg/aladdin/cover/cover/8/9/6/1/8961950053_1.jpg"> <b>‘히드라’ : 피터 라인보우, 마커스 레디커 지음 / 정남영, 손지태 옮김 / 갈무리 </b>

『히드라: 제국과 다중의 역사적 기원』은 권력과 질서, 자본주의 발전의 상징인 헤라클레스와 맞서 싸운 노예들, 선원들, 평민들 즉 다중의 반란과 저항의 숨겨진 역사를 방대한 역사적 사료를 통해 입체적 구성으로 밝혀낸 역사서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공식적인 역사서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장작 패고 물 긷는 사람들,’ 흑인 하녀들, 아프리카 노예들, 혁명적인 해적 선장, 자유와 평등을 주장한 혁명가들, 진정한 아메리카 혁명의 주역인 잡색 부대 등의 놀라운 사상과 폭발적인 행동을 만날 수 있다. 
]]></description>
			<author><![CDATA[교선문화실]]></author>
			<pubDate>Mon, 02 Jun 2008 09:50:14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전태일 평전]을 읽고 - 오민택]]></title>
			<link>http://www.nodong.org/metabbs/metabbs.php/post/30890</link>
			<description><![CDATA[
	“전태일 평전을 읽고”

                                                               오 민 택


사람에게는 누구나 소중한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소중한 것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며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한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것이다. 때로는 죽음도 불사하는 것에 강약은 있을지언정......

아마도 ‘전태일평전’을 읽은 것이 이것이 세 번째인 듯하다.
활동을 한다고, 운동을 한다고 선배들에게 뜻을 비췄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이가 바로 전태일이다.
사실 그 전에는 전태일을 몰랐다. 청계천에 있는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했었고, 몸에 불을 붙여 죽었다는 것 외에는 몰랐었다.
그리고, 선배들에게서 들었던 전태일은 비단, 선배들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누구나 전태일을 얘기한다. 운동을 한다면서 전태일을 모른다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왜 그럴까? 도대체 전태일이 누구길래, 어떻게 살았길래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전태일을 얘기할까?
이런 의문에서 ‘전태일평전’을 들었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도록 들고만 있었다.

어느날 아주 작은 일로부터 내가 ‘전태일평전’을 읽지 않았음이 들통났다.
처음 참여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며칠 앞두고 왜 그렇게 추운 날씨에 노숙을 하면서 하는지 몰랐다. 왜 그때 11월 13일을 전후해서 열리는지를 몰랐다.
운동을 한다면서 읽지 않은 책을 읽었다고 한 것이다. 그것도 선배들이 권유한 책을......
얼굴은 달아올랐다. 부끄럽기보다는 쪽팔렸다. 
선배들의 이해가 더욱 나를 오그라들게 했다. 마치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바로 책을 펴들었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사실 별다른 감동은 없었다.
‘그저 조금 치열하게 살았구나.’하는 정도와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하는 정도였다.
20대 초반의 새파란 고민을 30대 중반을 넘긴 내가 하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다.

두 번째 ‘전태일평전’은 쪽팔림의 강도가 더 심했다.
이제 어느 정도 맛을 알아간다는 생각이 스스로 들기 시작할 무렵, 나의 사고는 너무나 일방적이었다, 마치 흑백논리처럼.
동생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고, 나도 여느 선배들처럼 전태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열사가 살아있다면 너희들의 그 나태한 모습에 불을 지를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도 대책없이 늘어진 활동을 생각한단 말이냐?’ 이런 얘기를 스스럼없이 했었다.
나는 그렇지 못하면서......
나의 이러한 일방적인 다그침은 오래가지 못했다. 뿌리가 얕은 나무는 작은 바람에도 무너지는 것이 당연하고, 나 또한 얕은 활동으로 작은 시련에 견딜만큼 튼튼하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한 달 전 다시 ‘전태일평전’을 펴든다. 책꽂이의 여러 책 중에 그저 묻혀있던 그 책을......
집에서 읽기 시작하고 일을 하면서 읽기를 마쳤다.
어느 대목이랄 것도 없이, 어느 순간에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다른 이들이 ‘전태일평전’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웃고 말았는데......
옆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의아해하는 시선 따위는 아랑곳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눈물이니까.

내가 태어나고 불과 말도 채 떼지 못했을 무렵에 산화해간 전태일.
그는 인간애의 절정을 보여준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실천으로 보여준다. 
값싼 풀빵 한 개에, 작업이 끝나고 청소를 하면서, 한밤중에 두 시간이 넘는 길을 걸으면서도 낯을 찡그리지 않고 어린 여공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결코 혼자만의 저항으로는 꽃피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간다.
사장들은 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쥐고도 그들끼리 철저히 뭉쳐있다. 정권은 또 이런 사장들을 대변하기 위한 그들만의 논리를 한무더기 쌓아두고 있다.
하지만, 사장들에게는 돈벌이의 수단이 되고, 정권에게는 착취의 대상이 되는 노동자들은 저항을 모른다. 투쟁은 꿈도 꾸지 못한다.
아마도 전태일의 고민은 여기에서 한계를 느꼈으리라 짐작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때 꽃피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착취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태일의 인식을 철저하게 묵살했다, 가진자들은......
나아가 그런 인식을 불온하다 판단했다.

전태일은 더 이상 기계의 삶을 살아갈만큼 감정이 메마르지 않았다.
더 이상 어린 여공들이 햇빛도 보지 못하고 배곯아가며 좁은 다락방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을 용인할만큼 얼굴이 두껍지도 않았다.
재단사라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힘을 이용해 편하게 살아갈만큼 욕심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 끝없는 착취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자신이 견디지 못할 만큼 절박했다.
그리고, 그는 수많은 고민을 통해 결단을 한 것이다.
11월, 차가워지는 날씨보다 처한 현실이 더 추웠을 겨울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그는 몸에 불을 당겼다.
자신은 죽지만 자신의 몸에 붙은 불로 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해지기를 바라며......

많은 이들이 노동운동을 이야기한다. 때로는 비판 아닌 비난도 거침없이 한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치열하게 살았느냐?”고......
“당신들은 이 땅을 떠나 살겠느냐?”고......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기가 부끄러운 지금,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description>
			<author><![CDATA[교선문화실]]></author>
			<pubDate>Tue, 13 May 2008 11:07:31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완득이]를 읽고 - 김형수]]></title>
			<link>http://www.nodong.org/metabbs/metabbs.php/post/30448</link>
			<description><![CDATA[
	완득이

  어려서 유행했던 만득이 시리즈가 생각나는 이름 완득이.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하며 읽어내려 갔는데... 첫 문구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천연덕스럽게 교회에 앉아 자기 담임 똥주를 죽여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주인공 완득이의 심상치 않은 등장!

“똥주한테 현금 얼마나 받아 먹으셨어요. 나도 나중에 돈 벌면 그만큼 낸다니까요. 그러니까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 벼락 맞아 죽게 하든가, 자동차에 치여 죽게 하든가. 일주일 내내 남 괴롭히고, 일요일 날 여기 와서 기도하면 다 용서해주는 거예요? 뭐가 그래요? 만약에 교회 룰이 그렇다면 당장 바꾸세요. 그거 틀린 거예요. 이번 주에 안 죽여주면 나 또 옵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엽기적인 기도내용이 보여주듯 남다른 청소년 성장소설인「완득이」. 일반적으로 청소년소설이나 성장소설 류의 책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의 정체가 뭘까 싶었다. 동화같은 분위기에 잔잔하게 청소년의 심리와 일상을 묘사해가는 여느 소설과는 다른 맛이 있었다. 청소년이 읽기에도 부담이 없고(교훈적이지 않고), 오히려 정서적으로 잘 통할 법한 내용이 통통 튀는 문체와 개성만점의 인물을 둘러싸고 촥~ 펼쳐진다. 한 마디로 너무너무 재밌다.
  청소년이 읽어도 재미있는 소설 「완득이」. 그 비결은 담임 ‘똥주’의 캐릭터 설정에 있다. ‘똥주’는「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처럼 멋있지도 않고, 학생들을 위해 무한히 헌신하지도 않는다. 또 그 반대로 보통 묘사되는 나쁜 교사의 전형도 아니다. ‘똥주’는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바라보는 현실의 교사이다. ‘씨불’과 ‘야~ 이 새끼야!’라는 비교육적 용어가 들어가야만 대화가 이루어지고 문장이 완성되는 조폭 스타일의 교사다. 그런데 묘한 것은 똥주 입에서 나오는 육두문자가 유달리 학생들에게 친숙함을 준다는 데 있다. 욕은 욕에 그치지 않고 교사가 가진 권위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아마도 그랬으리라.
  무식하게 욕만 해대는 게 아니고, 나름 수급품도 챙겨주고 잊어버린 엄마도 찾아주고, 완득이 아버지를 위해 댄스 교습소도 차려주는 등 완득이를 배려하는 교사 똥주. 입은 험하지만 마음은 너무 따뜻하고 드넓은 스승을 누가 미워할까? 

  소설은 똥주의 기괴한 행동을 한 축으로 하고 다른 한 축엔 완득이와 완득이 가족이 있다.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놀리면 반드시 두들겨 패주고야 마는 싸움꾼 완득이, 업소에서 춤을 추는 난쟁이인 완득이 아빠, 베트남에서 이주해온 노동자인 완득이 엄마, 정신지체장애인인 삼촌. 짐작 가는대로 완득이 가족은 가난해서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정상이다. 만득이 아버지와 삼촌은 업소에서 밀려나 지하철행상에, 시골 5일장 장돌뱅이까지 우리 사회의 밑바닥 인생을 전전한다. 신문 시사면에 나오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와 모순들이 소설 속완득이 가족의 삶에 응축되어 있다. 
  난쟁이 아빠에 바보 삼촌, 엄마 없이 자라온 완득이의 인생이 얼마나 기구했으랴? 가정사에서 맛보지 못한 애정으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으랴~! 그래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완득이가 너무 대단하고, 훌륭하다. 자기가 힘들면 자기 속에 갇히기 마련인데 당차게 세상 밖으로 나와 자기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볼 줄 아는 속 깊은 아이 완득이. 완득이의 대찬 심성 속엔 또 다른 누군가의 노력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다름아닌 똥주!
“하-. 이 동네 집들 진짜 따닥따닥 붙어 있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숨어 있기에 딱 좋은 동네였다. 왜 숨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사실은 너무 오래 숨어 있어서 두렵기 시작했는데, 그저 숨는 것 밖에 몰라 계속 숨어 있었다. 그런 나를 똥주가 찾아냈다. 어떤 때는 아직 숨지도 못했는데 ‘거기, 도완득!’ 하고 외쳤다.”

  완득이의 고백처럼 꽁꽁 숨어버리고 싶은 똥주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것은 똥주의 애정과 관심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싸가지가 없다고 흔히들 말한다. 실제로 교사에게 대들거나 폭행을 가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기도 해서 설득력 있는 말이다. 또 혹자는 변화한 세월과 아이들 탓을 하며 ‘우리 땐 그러지 않았다’고 손쉽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완득이를 봐도 그렇지만,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이 너무 비정하고 폭력적이다. 그런 환경에서 폭력적이고 충동적이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조폭 스승 똥주를 보며 기억해야 할 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교사의 역할. 교육하는 사람의 역할이다.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좋은 친구, 좋은 선배가 되어 주는 것. 한 발 앞에 서서 손 내밀어 주고 위로해주는 사람. 요즘 싸가지 없는 아이들은 굉장히 진부하게도 그런 사람을 원하고 있다.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 속에 살아간다는 것, 그런 애정의 관계망을 확대해가는 건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일 것이라 생각해 본다.  ]]></description>
			<author><![CDATA[교선문화실]]></author>
			<pubDate>Fri, 02 May 2008 16:13:19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 2008-5월 권장도서 목록]]></title>
			<link>http://www.nodong.org/metabbs/metabbs.php/post/30447</link>
			<description><![CDATA[
	<b> 2008년 5월 권장도서 목록

<img src="http://bookimg.naver.com/hash_coverimg/bandi/largeimage/2/1/8/3/2183683.jpg"> ‘전태일 평전' : 조영래 지음 / 돌베개 </b>

노동운동의 불모지였던 이 땅에 분신항거로서 우리의 암담한 노동현실을 최초로 세상에 폭로하여,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조합의 새로운 출발을 가져오게 한 청년노동자 전태일의 삶과 투쟁, 그리고 죽음을 거의 완벽하게 복원시켜낸 우리시대의 고전.

<img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libro/book_img/5427/0100005767721_03.jpg"> <b>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 윤흥길 지음 / 문학과 지성사 </b>

이 책에는 70년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구체적인 문제들이 다각적으로 파헤쳐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구체적인 문제들은 근대화를 촉진시키고 있는 사회에서 흔히 발생되는 가치관의 부재라든가, 혹은 삶의 기반을 갖지 못하고 도시의 변두리에 밀려나 있는 하층민들의 삶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이다. 그러한 문제들을 작가 윤흥길은 비교적 폭넓은 상징적인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으면서, 또한 일괄된 비판적 작가 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70년 대 문학의 한 정점이었고, 동시에 80년 대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선구자였으며, 나아가서는 80년대 내내 현재형으로 살아 움직였고, 지금도 그 현재적 의미를 잃지 않고 있는 고전. 

<b>  
<img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libro/book_img/4528/0100005317827_03.jpg"> ‘길 밖의 길' : 백무산 지음 / 갈무리 </b>

삶의 궁극을 펼쳐 보이는 매서운 눈매를 통해, 한없이 투명하면서도 현묘한 시세계를 담아낸 시집. 삶에서 삶으로 이어지는 혁명적 가치들을 재구축하는 '백무산의 길 잡도리' 그 첫 번째 권이다.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몸과 마음의 경계가 없이, 시간과 공간의 벽마저도 슬슬 허물며 존재 자체를 풀어헤친 듯 자유롭다. 저자는 어떤 위계적 이미지도 갖지 않는 생명의 노래를, 봄날 돋는 새순의 떨림과 같은 존재의 파동을 들려주고 있다.

<b> 
<img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bookpark/goods_image/6/4/3/6/201416436s.jpg"> ‘다산의 아버님께' ; 안소영 지음 / 보림 </b>

이덕무와 백탑파 벗들의 모습을 유려하게 그려낸 소설,『책만 보는 바보』를 통해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 안소영이 이번에는 정약용을 부활시켰다. 화자의 시점은 정약용의 아들인 정학유, 아들의 눈을 통해 아버지 정약용과 그 가족의 신산한 삶이 눈에 밟히듯 그려진다. 이처럼 신산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아버지인 수학자 안재구와 작가의 삶이 겹쳐지기 때문이리라. 자식에게 추천해주어도 좋고, 자신이 읽어도 좋다. 

<img src="http://bookimg.naver.com/coverimg/kyobo/images/book/large/376/l9788958622376.jpg"> <b>‘서양미술사 1’ :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b>

진중권의 《서양 미술사》는 기존의 서양미술사 구성 및 서술체계를 단호히 버렸다. 저자는 대상 영역을 미술사의 맥락을 구성하는 데에 필요한 몇몇 주요한 양식으로 한정하되, 선택된 양식들 각각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조형의 원리 및 그 바탕에 깔린 예술의 의지까지 드러내는 깊이 있는 접근을 시도했다. 이 깊이를 확보하기 위해 미술사학에서 널리 알려진 대가들의 논문이나 저서를 선택하여, 그것들을 선형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미술사를 재구성했다. 즉 ‘서양미술의 원리’와 ‘서양미술의 역사’를 하나로 묶어내, 서양미술의 원리를 그 시대의 상황 안에서(공시적) 설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서양미술의 역사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통시적)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description>
			<author><![CDATA[교선문화실]]></author>
			<pubDate>Fri, 02 May 2008 16:05:14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소금꽃나무]를 읽고 - 오민택]]></title>
			<link>http://www.nodong.org/metabbs/metabbs.php/post/29472</link>
			<description><![CDATA[
	소금꽃은 해방꽃이다.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를 읽고-     
                                                       오 민 택   

3년 전, 김진숙이라는 이름을 들었었다.
소위 말하는 운동판에 뛰어든 지 5년여, 늦은 나이에 뛰어든만큼 욕심 또한 많았다. 나이 어린 선배들이 얘기하던 알 수 없던 용어들을 알고자 때로는 묻고, 때로는 책이나 자료들을 통해 이해하고......
그러던 어느 해, 아마도 김진숙이라는 이름을 들었던 무렵이었을게다.
꽃다지2, 그 노래가 어찌나 좋던지 긴 가사를 줄줄 외우고 자기소개를 하고 인사를 겸해 노래를 부를 때는 망설이지 않고 불렀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의문 하나,
‘굳게 움켜쥘 꽃병의 기름, 너에게 주마’하는 끝부분의 노랫말에서 ‘꽃병의 기름이라니? 꽃병에는 물을 부어야 하는데 왜 기름이지?’하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 의문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꽤나 심각하게 생각해서 화성까지 올라가는 차 안에서 내내 생각했었다.
끝내 옆자리에 앉았던 나이 어린 선배에게 그 뜻을 묻고야 말았다.
‘아이고 성님, 그 꽃병이 그 꽃병이다요.’하며 어찌나 웃던지 묻는 내가 무안할 정도였다.
한바탕 웃고 나서 설명을 해준 그 뜻에 ‘아하! 그렇구나, 그런 뜻이 있었구나.’하며 그 절묘한 형상화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었다.

“소금꽃나무”라는 책 제목을 보면서 ‘“소금꽃”은 알겠는데 도대체 “소금꽃나무”라니?’하는 의문이 3년 전처럼 불쑥 솟구친다.
도통 알지 못할 제목의 의문을 잠시 접어두고 저자를 보니 “김진숙”이다.
나이 어린 선배가 “진숙이누나”하던 그 김진숙이다.
‘어디 무슨 얘기를 썼나 보자.’하는 생각으로 책을 펴든다. 이미 제목에 대한 의문은 저자가 가진, 저자가 얘기하고자 한 속삭임에 사그러들었다.
책을 펴들고 절반쯤을 읽어나가자 내 생각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책을 마저 읽은 이틀.
주야 맞교대 근무하는 야간근무조에, 차를 조립해가며 2분 3분 발생하는 자투리 시간에 성급히 읽었던 책은 이틀만에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삶이었다.

배가 오랫동안의 조업을 마치고 부산에 입항을 하게 되면 필히 거쳐야 하는 선박 수리를 위해 드나들었던 조선소의 도크.
거기서 바라보면 한진중공업의 마크가 새겨진 크레인이 커다랗게 보였었다.
레일 위를 천천히 굴러가던 크레인이 장관이었다.
수리를 마치고 바다에 배를 띄우기 위해 도크에 물을 담기 시작하면 천천히 떠오르던 배 또한 장관이었다.
그저 아무 것도 몰랐던 그때는 장관이었다.
크레인에서 노동자가 죽고, 도크에서 죽고 노동자들이 그렇게 죽어간 것을 몰랐던 그때는 장관이었다.
그리고, 노동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지는 근래에 또 노동자가 죽어간다. 
그렇게도 장관이었던 그 장소에서......

“소금꽃나무”는 노동자였다.
그저 땀흘려서 피어나는 형상이 아니라, 땀흘려 피워내는 본질이었다.
봉제공장 ‘시다’로부터 조선소 ‘땜쟁이’까지, 영도 조선소의 ‘도시락투쟁’부터 부산 지하철의 ‘부지매투쟁’까지 한 순간도 소금꽃을 피우는 소금꽃나무로서의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은 저자의 계절 없는 부지런함에 막연한 존경심까지 생긴다.
박창수열사로부터 김동윤열사까지 “소금꽃나무”에 등장하는 그 어느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잊은 적이 있던가.
어쩌면 저자는 스스로 밝힌 그들에 대한 부채감 때문에 그렇게도 부지런히 소금꽃을 피웠는지도 모르겠다.

이 땅의 노동자라면 누구 하나 소금꽃을 피워보지 않은 이 있을까.
이 땅의 노동자라면 누구 하나 소금꽃나무가 되어 보지 않은 이 있을까.
토양이 척박할수록 더욱 환하게 피어나는 소금꽃.
크기보다, 연륜보다 의지와 실천에 따라 튼실해져가는 소금꽃나무.

“소금꽃나무”는 노동자였다.
제 아무리 휘황한 언어일지라도 다 표현하지는 못할 노동자였다.
그런 노동자를 저자는 가슴에서 끄집어낸 것이다.
기억 저편의 가물거리는 지난 일들을 머리 싸매가며 떠올린 것이 아니라, 가슴을 통째로 도려내어 글로 형상화 한 것이다.
이런 책 앞에서 오만하게 쳐들었던 내 사고의 낮음이라니......
]]></description>
			<author><![CDATA[교선문화실]]></author>
			<pubDate>Thu, 10 Apr 2008 09:35:04 +0900</pubDate>
		</item>
		<item>
			<title><![CDATA[[지식채널e-season 2]를 읽고 - 김형수]]></title>
			<link>http://www.nodong.org/metabbs/metabbs.php/post/29065</link>
			<description><![CDATA[
	

  감성적인 영상과 귀에 감겨드는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적인 영상 지식채널e. 정말 좋다는 주위의 권유 덕에 우연히 보게 된 지식채널e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그랬다.
  인터넷을 접속하면 읽을거리, 볼거리가 넘쳐나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일상인 요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며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지식채널은 그 자체가 빛나는 존재이다. 모두가 아는 게 많고 모두가 한 분야에선 일가견을 가진 시대, 진정한 지식은 무엇에 기초해야 하는가를 실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으로 본 「지식채널e-season2」는 영상보다 그 감동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다양한 삶에 천착하는 애정과 주류가 주목하지 않는 가치를 부각하여 최근의 이슈, 학계의 논쟁거리와 주요개념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사회의 근본적 모순을 드러내는 사실에서부터 우리 인식의 오류와 무지, 편견을 드러내는 것까지 「지식채널e-season2」의 소재거리는 실로 다양하다.
  한미FTA, 지역주의, 정크푸드의 해악성, 치매, 마이클무어의 다큐영화, 청계천 노점상, 장애인 이동권, 입시에 찌든 초딩, 한국의 시민혁명, 전태일의 삶과 죽음, 멸종위기 동물, 탈북자, 찰리채플린, 쿠바 음악, 렘브란트, 김홍도와 신윤복, 이봉주, 김광석,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에 이르기까지...
  그 중 인상적인 것을 꼽으라면 치매 노인을 모시고 있는 며느리의 심정을 그대로 기술한 ‘치매, 기억을 잃다’이다. 치매는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독성 단백질이 쌓여 하루 수백만 개의 뇌세포가 사라지는 질병이라 한다. 기억의 조각이 파편처럼 남게 되어 과거와 현재의 어느 중간쯤을 살아가는 치매노인을 부양하는 가족은 150만명이다. 

“어머니는 밤이면 냉장고에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꺼내 이불로 덮어놓고 자식 오기를 기다렸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어머니 때문에 어느 순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언론에 자식이 치매노인을 폭행했다는 기사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더라.”
“시어머니가 가출하자 차라리 시어머니를 찾지 못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못된 며느리다...” <치매환자 가족 심리극 중>

  드라마에서 한 번씩 볼 때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못했다. 왠지 신파같고 드라마의 허구성 때문에 현실감이 덜 나기도 했는 것 같고... 그런데 「지식채널e-season2」를 보며 드라마가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단문제, 노동문제, 사회적 약자 등등 사회구조적 모순만을 중시하는 편협된 사고틀에 갇혀 그 이외의 것은 홀대하거나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 것들을 가볍게 여기거나 무심하게 대하고 있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아울러 내가 관계맺고 소통하는 사람들과 얼마나 정직하고 진실되게 만나왔는가도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지식채널이 감동적인 이유는 지식의 양에 있지 않고 지식의 정직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열을 지양하여 진리의 핵심만을 취하고, 왜곡되지 않은 지식에 기초하는 것.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사랑까지 담아내는 것. 
  지식과 정보가 부의 축적을 위한 수단이 되고, 실용적인 지식만이 상품성을 가지는 천박한 지적 풍토에서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머금은 ‘지식채널e'는 너무 고마운 존재이다. 앞으로도 지식과 함께 커다란 깨우침을 주는 지식채널을 기대한다.]]></description>
			<author><![CDATA[교선문화실]]></author>
			<pubDate>Tue, 01 Apr 2008 12:08:1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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