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줌아웃(-)    공문철 노동과세계 노동운동자료실 노동방송국 회원가입로그인
검색
책읽는 노동자
[완득이]를 읽고 - 김형수0
2008-05-02 16:13:19교선문화실172
완득이

어려서 유행했던 만득이 시리즈가 생각나는 이름 완득이.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하며 읽어내려 갔는데... 첫 문구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천연덕스럽게 교회에 앉아 자기 담임 똥주를 죽여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주인공 완득이의 심상치 않은 등장!

“똥주한테 현금 얼마나 받아 먹으셨어요. 나도 나중에 돈 벌면 그만큼 낸다니까요. 그러니까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 벼락 맞아 죽게 하든가, 자동차에 치여 죽게 하든가. 일주일 내내 남 괴롭히고, 일요일 날 여기 와서 기도하면 다 용서해주는 거예요? 뭐가 그래요? 만약에 교회 룰이 그렇다면 당장 바꾸세요. 그거 틀린 거예요. 이번 주에 안 죽여주면 나 또 옵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엽기적인 기도내용이 보여주듯 남다른 청소년 성장소설인「완득이」. 일반적으로 청소년소설이나 성장소설 류의 책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의 정체가 뭘까 싶었다. 동화같은 분위기에 잔잔하게 청소년의 심리와 일상을 묘사해가는 여느 소설과는 다른 맛이 있었다. 청소년이 읽기에도 부담이 없고(교훈적이지 않고), 오히려 정서적으로 잘 통할 법한 내용이 통통 튀는 문체와 개성만점의 인물을 둘러싸고 촥~ 펼쳐진다. 한 마디로 너무너무 재밌다.
청소년이 읽어도 재미있는 소설 「완득이」. 그 비결은 담임 ‘똥주’의 캐릭터 설정에 있다. ‘똥주’는「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처럼 멋있지도 않고, 학생들을 위해 무한히 헌신하지도 않는다. 또 그 반대로 보통 묘사되는 나쁜 교사의 전형도 아니다. ‘똥주’는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바라보는 현실의 교사이다. ‘씨불’과 ‘야~ 이 새끼야!’라는 비교육적 용어가 들어가야만 대화가 이루어지고 문장이 완성되는 조폭 스타일의 교사다. 그런데 묘한 것은 똥주 입에서 나오는 육두문자가 유달리 학생들에게 친숙함을 준다는 데 있다. 욕은 욕에 그치지 않고 교사가 가진 권위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아마도 그랬으리라.
무식하게 욕만 해대는 게 아니고, 나름 수급품도 챙겨주고 잊어버린 엄마도 찾아주고, 완득이 아버지를 위해 댄스 교습소도 차려주는 등 완득이를 배려하는 교사 똥주. 입은 험하지만 마음은 너무 따뜻하고 드넓은 스승을 누가 미워할까?

소설은 똥주의 기괴한 행동을 한 축으로 하고 다른 한 축엔 완득이와 완득이 가족이 있다.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놀리면 반드시 두들겨 패주고야 마는 싸움꾼 완득이, 업소에서 춤을 추는 난쟁이인 완득이 아빠, 베트남에서 이주해온 노동자인 완득이 엄마, 정신지체장애인인 삼촌. 짐작 가는대로 완득이 가족은 가난해서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정상이다. 만득이 아버지와 삼촌은 업소에서 밀려나 지하철행상에, 시골 5일장 장돌뱅이까지 우리 사회의 밑바닥 인생을 전전한다. 신문 시사면에 나오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와 모순들이 소설 속완득이 가족의 삶에 응축되어 있다.
난쟁이 아빠에 바보 삼촌, 엄마 없이 자라온 완득이의 인생이 얼마나 기구했으랴? 가정사에서 맛보지 못한 애정으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으랴~! 그래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완득이가 너무 대단하고, 훌륭하다. 자기가 힘들면 자기 속에 갇히기 마련인데 당차게 세상 밖으로 나와 자기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볼 줄 아는 속 깊은 아이 완득이. 완득이의 대찬 심성 속엔 또 다른 누군가의 노력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다름아닌 똥주!
“하-. 이 동네 집들 진짜 따닥따닥 붙어 있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숨어 있기에 딱 좋은 동네였다. 왜 숨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사실은 너무 오래 숨어 있어서 두렵기 시작했는데, 그저 숨는 것 밖에 몰라 계속 숨어 있었다. 그런 나를 똥주가 찾아냈다. 어떤 때는 아직 숨지도 못했는데 ‘거기, 도완득!’ 하고 외쳤다.”

완득이의 고백처럼 꽁꽁 숨어버리고 싶은 똥주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것은 똥주의 애정과 관심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싸가지가 없다고 흔히들 말한다. 실제로 교사에게 대들거나 폭행을 가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기도 해서 설득력 있는 말이다. 또 혹자는 변화한 세월과 아이들 탓을 하며 ‘우리 땐 그러지 않았다’고 손쉽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완득이를 봐도 그렇지만,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이 너무 비정하고 폭력적이다. 그런 환경에서 폭력적이고 충동적이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조폭 스승 똥주를 보며 기억해야 할 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교사의 역할. 교육하는 사람의 역할이다.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좋은 친구, 좋은 선배가 되어 주는 것. 한 발 앞에 서서 손 내밀어 주고 위로해주는 사람. 요즘 싸가지 없는 아이들은 굉장히 진부하게도 그런 사람을 원하고 있다.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 속에 살아간다는 것, 그런 애정의 관계망을 확대해가는 건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일 것이라 생각해 본다.
목록글쓰기

노동UCC
영상자료실
현안자료